2011. 8. 21 (일)

* 06:10 센타를 출발, 매사이 교회에서 CCT 사무총장, 전도부장과 합류. 그 분들 차로 합승, 미얀마 국경지역으로 향하다. 국경지대 중국인 촌에서 또 한 사람의 중국인 안내원을 만나 그 분이 안내하는 식당에서 쌀국수로 아침 식사. 이 마을은 국경지역 오지 마을이면서도 상가도 주택도 시멘트로 지은 깨끗한 집들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 설명을 들으니 차를 생산하는 지역이란다.

* 아침 식사 후 중국인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태국-미얀마 국경을 넘다. 해발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산의 능선을 따라 구름 속을 달리는 것 같다. 태국 국경초소에 이르러서부터 우리 일행은 중국인 안내원 차로 몰아 타고 중국인 안내원의 통행증으로 태국 국경초소와 미얀마 국경초소를 통과했다. 국경 초소래야 서로 10m 정도나 될까 마주하고 있는 초소인데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도로에 나무기둥을 걸쳐 놓고 차가 지나갈 때마다 줄을 잡아당겨 통과하게 하는 그런 국경초소이다.

도로를 경계로 동쪽은 태국이고 서쪽은 미얀마이다. 태국 쪽은 대규모 차 밭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는데 미얀마쪽은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태고의 숲이다. 태국 쪽은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는데 미얀마 쪽은 울퉁불퉁 패인 진흙 길인데 그나마도 경사가 가파른 지역은 자동차 바퀴가 지나가는 부분에만 시멘트 벽돌을 깔고 콘크리트를 친 아주 경제적인 간이 포장도로이다. 길 옆에는 군데군데 시멘트 벽돌을 쌓아 놓은 곳이 보인다. 도로포장 작업?이 계속 중인 모양이다.

태국 국경초소 초병는 군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 있는데, 미얀마 초병은 군복을 아래 위 한쪽만 입고 있거나 아예 평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민병대인가 했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샨족 반군들이란다. 이해가 갔다.

* 중국인 안내원이 모는 사륜구동차로 스키를 타듯이 곡예를 하면 겨우 겨우 예배당엘 도착했다. 규모가 꽤 큰 예배당이다. 시멘트로 제대로 지은 깨끗한 건물이다. 5, 60평은 족히 되어 보인다. 인도차이나 선교회에서 지어 준 예배당이란다. 현관 위 쪽에 교회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영어로 “CHURCH OF SHAN STATE-1" 라 쓰여 있고 그 밑줄에 나란히 버마어와 태국어로 쓰여 있다. SHAN STATE(주? 국가?) 제1교회라는 뜻인가 보다.

*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산악용 군용 짚차에 카이젤 수염을 한 한 사람이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타고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온다. 군인들은 자연스럽게 흩어져서 사주경계에 들어간다. 사병들은 그런대로 군복과 기관소총을 들고 있고, 카이젤 수염은 상의는 평복이고 하의는 군복이다. 신발은 6.25때 중공군이 신었던 것과 같은 군복기지로 만든 군화이다.

중국인 안내원이 먼저 친숙하게 인사를 하곤 우리들을 소개한다. 아무런 경계의 빛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출현에 의아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이 국경지역이기 때문에 지역 수비대장 쯤 되는가 보다. 역시 소개를 받고 보니 이 지역을 책임 지는 최고 책임자라고 한다. 교회 현관에 플라스틱 파란 의자를 내다 주며 우리를 앉게 한다. 거의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교회 마당에서 보이는 전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구름과 산봉우리들이 연이어져 있어 산의 바다와 구름의 바다가 만나 있는 것 같다.

* 수인사를 나누고 사무총장 목사님과 중국인 안내원은 다시 국경을 넘어 중국인 마을 교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회의 주재차 중국인 마을 교회(은광교회)로 가고 우리(전도부장, 김장원 선교사, 나와 그리고 카이젤 수염)는 남아서 예배시간 되기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지역은 미얀마 소수종족 중에 샨족이 거주하는 지역이고, 이 마을에는 병원도 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단다. 계곡 넘어 맞은편 산정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간간이 구름이 흩어질 때엔 잠시 마을의 모습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고산지대 능선 위의 구름 속에 있는 셈이다.

* 11시 가까이 되니 마을 사람들이 교회가 있는 언덕위로 삼삼오오 올라오기 시작한다. 교회 중년 한 분이 우리 일행을 강단 위 좌석으로 안내한다. 교인석에도 강단 위에도 파란 색 플라스틱 개인 의자가 놓여 있다. 교인석에 앉겠다고 해도 굳이 강단 위 좌석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자리가 정돈되자 한 중년 남자가 강단 아래 왼쪽 한 켠에 탁자가 놓여 있는 곳에서 사회를 보며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이 대략 4, 50명은 되어 보인다. 먼저 우리 일행을 소개하고 CCT의 전도부장 목사님의 설교로 예배가 진행되었다. 교인들은 대부분 성경 찬송가가 없고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성경 찬송가를 몇 사람이 나누어 보면서 예배가 진행되었다. 설교 전과 후에 특송을 하는데 10여명의 교인들이 손에 악보 책자를 들고 나와서 찬양을 하는데 라후어 찬양이다. 라후족이 많은 모양이다. 교인석에 더러는 아카족 복장도 보인다. 라후족은 찬양을 참 잘한다. 한 사람이 음정을 잡아 주면 그 음정에 맞추어 4부로 합창이 불려지는데 화음이 참 아름답다.


악보 가사는 알파벳으로 만든 라후어로 적혀 있고, 음표도 콩나물 기호가 아니라 알파벳 기호로 표기되어 있다. 성경 봉독도 라후어 성경책으로 봉독하는데 한 사람이 앞에 나와서 대표로 봉독을 한다. 아마 성경책이 모자라서이기도 하겠고 문자해독이 안 돼서 그럴 수도 있겠다. 특송이 끝나고 헌금을 먼저 한 뒤에 설교를 했다. 예배 분위기는 산만하다. 예배당 뒤편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고 여자석에서는 더러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그래도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와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 예배를 마친 후에 예배당 현관에 의자를 내다 주고 앉게 하고는 뜨거운 차를 대접한다. 비가 와서 쓸쓸하던 차에 마시는 차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준다.

우리가 타고 온 중국인 안내원의 차를 기다리느라 지체하고 있는데, 바퀴가 큰 검정색 승용차가 올라온다. 오다가는 진흙탕 길에 빠져서 엔진소리만 요란하게 내면서도 빠져나오질못한다. 4륜구동차인 모양인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남자 교인들 5, 6명이 나서고 그러고도 안 돼서 근처에 있던 군인들 7, 8명까지 가세해서 겨우 교회 마당으로 올라 올 수 있었다.

우리를 타게 한 후에 마을 한 집으로 안내한다. 그 마을에서는 괜찮게 사는 집인 모양이다. 물론 나무와 대나무로 지은 집이다. 주부가 되는 듯한 부인과 식구들이 예의를 다해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준다. 식당에 해당되는 공간도 있고, 10명 정도가 둘러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식탁도 있다. 이미 음식들이 식탁위에 차려져 있었다. 우리 나라의 미나리 같은 팍붕을 데쳐서 묻힌 나물, 죽순 나물, 돼지고기 찌개, 생선을 갖은 양념에 묻힌 요리, 그리고 밥이다. 식탁이 커서 같은 내용의 음식들을 두 군데로 늘어놓았다. 밥은 공기에 반쯤 담겨져 있었는데, 먹는 양을 봐가면서 딸인 듯한 처녀가 밥 냄비를 공손히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공기가 비면 밥을 더 덜어주곤 한다. 음식들이 입에 맞았는지 모두들 여러 번 밥을 청해 만족하게 먹는 듯 했다.

* 식사 후에 벽에 붙어 있는 미얀마 지도와 샨족 지역의 지도를 보면서 우리가 위치해 있는 곳을 대충 집작할 수 있었다. 벽 위쪽은 양 옆에 태국의 왕과 왕비의 사진이 결려 있다. 샨족을 타이야이족이라고도 하는데 타이족과는 형제간이라고 설명을 해 준다. 지금 이 지역은 험준한 고산지이고, 미얀마족에 대항해서 독립을 원하는 샨족 반군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카이젤 수염은 반군의 부대장이고 대장이 다른 한 지역을, 부대장이 이쪽 지역을 담당하고 있단다.

* 카이젤이 식사를 하면서 내게 말을 건넨다. 언젠가 한국에 한 번 초청해 달란다. 가 보고 싶단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도 교인인데 세례만 아직 받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다. 그 사람을 선교의 접촉점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에게도 샨족 지역에 교회가 들어서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기독교회를 통해서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김장원 선교사님이 새문안교회 의료선교팀을 데리고 오면 어떻겠느냐고 하신다. 그럴 수만 있으면 여러 면에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CCT의 사무총장과 전도부장도 일말의 기대가 있어서 김장원 선교사보고 같이 가자고 한 모양이다.

* 식사 후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스키를 타듯 하면서 가파른 산의 경사길을 미끄러지듯 국경초소를 향해 돌아왔다. 10M 거리의 간격을 두고 나무 기둥을 걸쳐 놓은 국경을 건너 태국 땅으로 넘어 왔다. 오른 쪽 차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은 태국 땅이고, 자연 그대로 밀림처럼 방치되어 있는 곳은 미얀마 땅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해 주었다.

* 翠蜂茶壯, 물총새와 벌들의 낙원인 차의 장원이라는 뜻인가 보다.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과 차를 가공하는 공장의 규모가 꽤 크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차는 전량 대만으로 보내져서 대만차로 팔린다고 한다. 울롱차(烏龍茶)를 중심으로 몇 가지 차를 재배하는 모양이다. 안개비가 내리는 데도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어서 차에서 내려 다장의 경관도 구경하고 카메라에도 담고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다. 다장에 들어가 차 한잔이라도 하고 올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 태국 국경지역 중국인 마을 恩光敎會로 왔다. 아직도 교인총회가 계속되고 있었다.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파와 내보내자는 파로 나뉘어 갈등이 있는 모양이다. 여러 사람들이 번갈아 나와 마이크를 잡고 의견을 이야기 하면 한 사람이 중국어나 태국어로 통역을 해야 하는 그런 회의이다. 중국인 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종족들과 함께 섞여 있다.

지루한 토론 끝에 매쑤웨이 경찰서의 고위 간부라고 하는 분이 의견을 낸다. CCT에서 법률 자문역으로 위촉한 사람이라고 한다. 양쪽 의견을 다 들어보고 해결책을 강구해 보자는 의견이다. 사무총장 목사님도 양쪽의 의견도 더 청취하고 기도도 더 하고 2개월 후에 다시 모이자는 제안으로 회의를 마쳤다. 전도부장 목사님의 기도 인도와 축도로 폐회를 선언했다. 마포교회가 생각이 나서 안쓰러웠다.

* 돌아오는 길에 치앙라이에 있는 “아오엑” 이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들을 하고 사무총장은 치앙라이 비행장에서 방콕으로, 전도부장은 차앙마이로 돌아가셨다. 김장원 목사님과 나도 매쑤웨이로 돌아왔다. 김장원 목사님은 사택에 기다리고 계시던 사모님과 함께 치앙마리로 내려가셨다. 밤 10시에 태영군 어머니가 오시기로 되어 있고, 내일 오전에는 람푼교회 운영위원회가 소집되어 있다고 한다.

* 돼지 우리에 들러 다리 다친 돼지의 상태를 보고 숙소로 들어왔다. 축늘어져 꼼짝도 않는다. 지팡이로 건드려 보니 눈도 뜨고 몸도 조금은 움직여 보인다. 먹이를 좀 먹기나 했는지 걱정이다.

* 클라우드에 올려 있는 일지 폴더에서 오늘의 일지 정리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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